이번엔 소제목에 들어갔던 '킬로미터 제로'에 대한 내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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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로미터 제로’는 스페인어로는 ‘낄로메뜨로 쎄로 Kilómetro Cero’고, 당신이 다른 곳에서 들어 알고 있을 ‘포인트 제로’나 ‘제로 마일스톤’ 과 같은 의미의 용어예요. 한 지역 안에서 거리를 재거나 도로를 만드는 데 기준이 되는 지점이지요. 마드리드 주 청사 앞길 바닥에 있는 이 표지는 스페인 안의 방사형 도로들이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1950년에 킬로미터 제로의 첫 표지가 생겼고, 2009년에 위에서 말한 뿌에르따 델 솔의 공사가 완공되면서 50여년간 밟힌 바람에 그림과 글이 다 지워진 이 표지가 새것으로 바뀌었어요. 재질과 윤곽이 전체적으로 세련되어진 걸 빼곤 기본 디자인에는 거의 변함이 없어요. 부끄러워 말고 쪼그려 앉아서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이베리아 반도 내 스페인 영토가 짙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고 하얀 부분은 포르투갈과 남프랑스지요. 킬로미터 제로에서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도로가 그려져 있고요. 이베리아 반도 아래로 양쪽에 있는 그림들이 2009년 디자인에 새로 추가된 부분인데, 오른쪽은 마드리드 자치주 문장이고, 왼쪽은 스페인의 도로항만공학을 상징하는 의외로 귀여운 로고예요. 배의 닻, 돌다리, 만 등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지요. 이 금속 표지에서는 알 수 없지만 원래 그림에는 색도 곱게 칠해져 있어요.
방방사형이나 도로항만공학이라는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도 킬로미터 제로가 어디인지는 알아요. 스페인의 모든 방사형 도로의 근원이라는 이곳이 한편 만인의 약속장소로도 쓰이기 때문이에요. 유럽 어느 도시에서보다도 밤이 활기찬 마드리드에서 주말 약속은 저녁식사 시간인 밤 아홉 시 이후로 잡는 게 보통이고, 장소를 정하기가 애매하면 흔히 이곳 킬로미터 제로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지요. 솔 역에 도착해서 계단을 올라가면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져요. 시위라도 열릴 듯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각자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서성대고 있거든요. 개중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주 청사 벽에 기대서서 행인들을 하나하나 뜯어봐요. 혹 실례다 싶을 정도로 집요한 시선이 느껴지면 당신도 그 시선의 주인을 마주 쳐다봐주면 돼요. 그 사람이 미안해하며 얼른 고개를 돌리거나, 둘이 므흣하게 눈이 맞아 대화를 시작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예요. 만약 얘기를 시작한다고 해도 꼭 서로 이름을 밝히거나 같이 놀아야 하는 건 아니니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얘기가 너무 잘 통하면 상대가 안내를 해주겠다거나 같이 맥주 한 잔 하자는 제안까지 해 올 수도 있는데, 불안하거나 부담스러우면 아무 핑계나 대면서 가볍게 거절하면 돼요. 전혀 실례가 아니니까요.
유유명한 만남의 장소답게, ‘킬로미터 제로’라는 제목의 스페인 영화도 있어요. 여기서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서로 약속이 꼬이면서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이 생기는 섹시 코미디예요. 2000년 작품인데, 위키피디아 스페인을 참고하면 장르가 코메디 겸 LGBT라고 되어 있는데, LGBT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약자예요. 영화를 주제별로 구분할 때, 주류가 아닌 성 정체성이나 성적 취향을 주제로 삼는 장르라고 이해하면 되겠지요. 이 영화는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탔는데 과연 그 중 네 군데가 게이-레즈비언 영화제였어요.
참참고로 얘기하자면 스페인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예요. 2005년 7월 2일에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었고, 의회 밖에서 초조하게 투표 결과를 기다리던 동성애자 연인들은 소식이 전해지자 기쁨에 넘쳐 소리치며 뛰었지요.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 대해 떠올리곤 하는 화려하고 대담한 이미지와 상관없는, 배 나오고 점잖은 남자들과 수수한 여자들 무리가 만세를 불렀어요. 그로부터 벌써 5년이 지났네요. 결혼할 사람들은 그때 많이들 결혼해서 살고 있어요. 물론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일부러 널리 밝히지는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고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상당수의 스페인 동성애자들이 그들 고유의 제스처나 억양, 어휘 등 눈에 띄는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드러내는데, 모든 동성애자들이 이를 공유하거나 긍정하는 것도 아니고 양성애자들에게서는 비슷한 요소들이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없어요. 개인의 정서와 취향 문제이다 보니 기준이 있더라도 애매할 수밖에 없지요. 한국 문화에는 없는 부분이니 기회가 되면 나중에 다시 얘기해 볼까요.
자, 자, 이쯤이면 당신은 옛 왕실 우체국 건물과 킬로미터 제로를 떠나 좀더 단순하고 감각적인 곳으로 가고 싶겠지요. 눈이나 입이 즐거운 곳이라든가. 일단 왕실 우체국 건물을 마주보고 오른편을 보면서, 늘 붐비는 맥도날드와 오래된 제과점 라 마요르끼나 La Mallorquina 방향으로 가 볼까요. 그 구간에 도둑이 아주 많으니 조심하세요. 마드리드 사람들을 따라서 백팩은 앞으로 매세요. 남극에 살 법한 커다란 개가 맥도날드 문을 가로막고 드러누워 있다고 해도 한눈 팔지 마세요. 종류도 크기도 다양한 마드리드의 개들은 주인이 식당에 들어가면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알면서도 불안에 떨거나 불평하는 개들도 있고, 반대로 다른 곳으로 마음대로 놀러가 버리는 개들도 있지만 주인들도 자기 개들의 행동에 익숙하니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사람에 치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맥도날드 앞에 서면 세 개 거리가 보여요. 왼쪽으로 꺾이는 작은 거리도 오른쪽의 큰길도 아닌 가운데 길을 따라가세요. 나중에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거기는 뽀스따스 거리 la calle Postas예요. 뿌에르따 델 솔에서 마요르 광장 La Plaza Mayor으로 연결된 가장 빠른 길이지요. 해물튀김을 파는 술집이며 플라멩코 의상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당신은 성급히 맘이 동할지도 몰라요. 의상은 구경해도 좋지만 비싸니까 아무것도 사지 마세요. 간단히 맥주 한 잔만 마실 게 아니면 바에도 들어가지 마세요. 이 뽀스따스 거리는 작지만 마드리드 사람들도 관광객들도 꼭 지나치게 되는 곳이라 모든 가격이 세거든요. 지갑은 꺼내지 말고 구경만 하면서 마요르 광장으로 들어갑시다. 정 쇼핑을 하고 싶다면 마요르 광장으로 진입하기 직전 오른쪽에 있는 선물 가게에는 들어가봄 직해요. 전통음식 모양으로 만든 냉장고 자석이나 투우사 옷을 본뜬 앞치마 같은 흔한 기념품들이 제법 산뜻해요. 따로 기념품을 구할 시간이 없으면 여기서 사도 좋고, 번화가에서 먼 곳까지 찬찬히 둘러보고 가격을 비교할 의향이 있다면 여기선 일단 눈으로만 사치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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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써놓은 샘플은 여기까지만이에요.
이 글을 쓰는 게 굉장히 즐거우니, 시간 나는 대로 마드리드 산책 진행해 보겠습니다.
아, 참고할 만한 이미지도 되는대로 덧붙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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